결혼준비를 시작할 때는 본식 당일이 마냥 멀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참 빠르다. 잔뜩 긴장해서 좀 늦게 잠들었지만 무사히 일찍 일어나서 샴푸로만 머리 감고, 얼굴엔 기초만 바르고, 벗기 쉬운 셔츠를 입고 빌라드알티오라로 출발했다. 내가 오늘 결혼을 하고 유부녀가 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빌라드알티오라에 도착하고 바로 메이크업과 헤어부터 시작했다. 디아브 메이크업은 신부 전용 메이크업실이 안쪽에 따로 있었다. 프라이빗한 1인룸이라 아늑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없으니 뭔가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디아브 메이크업 & 헤어 후기는 이전 포스팅에 자세히 썼으니 여기서는 간략하게 넘어가겠음! 소라빵 머리와 턱의 쉐딩 자국, 나와 맞지 않는 립 컬러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어느 정도 잘 해결했고 다 끝난 일이니 잊기로 하자...
메이크업과 헤어가 끝난 뒤에는 내가 셀렉했던 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티아라, 베일, 귀걸이 풀세팅까지 마치고 신부 대대기실로 이동했다. 빌라드 알티오라의 독특한 점이 신부 대대기실이 있다는 거! 그래서 신부 대기실이 빌 때까지 편안하게 쉬고 있을 수 있었다. 신부 대대기실로 이동할 때 홀을 쭉 가로질러야 해서 조금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잠깐이니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헬퍼 이모님이 베일과 드레스가 바닥에 끌리지 않게 의자에 돌돌 말아 올려주셨는데 뭔가 달팽이 같은 모양새라서 조금 웃겼음. 화장실도 있는데 나는 이용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있긴 해도 용변 보기가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드레스 입기 전에 꼭 미리 화장실을 다녀와두자.
앞 타임 신부 입장이 끝난 뒤에야 신부 대기실을 쓸 수 있다. 바로 손님맞이를 하는 건 아니고 신부 대기실에서 스냅 촬영을 몇 장 진행했다. 신랑이 인사하러 나가기 전에 같이 여러 포즈로 사진을 남기는 것!
둘 다 청심환을 먹어서 그나마 긴장이 조금 풀렸던 것 같다. 확실히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걸 잡아주는 듯.
신랑과의 스냅 촬영이 끝나면 이제 신부 대기실에서 하객들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솔직히 이때가 가장 힘들었음... 계속 웃고 있어야 하고 사진 찍어야 하고... 솔직히 웨딩촬영보다 더 힘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초~중반에만 조금 바쁘고 후반에는 한산해져서 동생이랑 같이 떠들며 긴장을 풀었다.
신부는 신부 대기실에 있어야 하고, 양가 부모님과 신랑은 홀에서 인사하느라 정신없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화환 사진은 친구나 다른 가족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꼭 부탁하는 게 좋다. 스냅 업체에서도 포토테이블은 찍어주지만 화환은 따로 찍어주지 않기 때문!
참고로 전타임 예식이 끝난 후에는, 스크린에 우리가 메일로 보낸 식전 영상이 반복 재생된다. 길진 않고 10분 정도...?
아무튼 우리 예식은 2시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양가 어머님이 손을 잡고 입장한 뒤, 촛불에 불을 붙이는 화촉점화가 첫 단계였다.
그 뒤를 이어 신랑 입장! 빌라드알티오라는 단상 쪽이 열리는 형태라서 앞에서 입장하는 것도 가능한데, 포스팅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신랑은 주목받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그냥 버진로드를 걸어 입장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나는 닫힌 문 뒤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화촉점화와 신랑 입장은 직접 볼 수 없었음... (아마 이건 빌라드알티오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예식장이 똑같을 듯)
잔뜩 긴장한 상태로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서 신부 입장! 리허설에서 배웠던 걸 계속 곱씹으면서 최대한 실수 없이 걸으려고 노력했다. 삐끗하거나 넘어지는 상상을 잔뜩 했었는데 다행히 끝까지 잘 걸었음. 휴...
높은 구두를 신지 않고 나에게 맞는 5cm 구두를 신어서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나처럼 하이힐을 평소에 안 신어본 사람이라면 집에서 따로 맹연습을 하던지, 그냥 낮은 구두를 신는 게 좋을 듯.
아빠 손을 잡을 때 슬프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드레스 밟지 않고 걷는 것에 온 신경이 쏠려 있어서 슬픈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다. ㅋㅋㅋ
신랑 신부 맞절 후에는 혼인서약서를 낭독할 차례다. 청심환 덕분인지 떨지 않고 무난하게 읽었음! 신랑은 긴장을 해서 그런지 읽다가 하나 틀렸지만, 우리만 눈치챌 정도로 어색하지 않게 바로 이어서 읽으며 무사히 잘 끝냈다.
혼인서약서 낭독 후에는 아버님의 성혼선언문과 엄마의 덕담이 이어졌다. 엄마의 덕담을 듣다가 울진 않을까 걱정했는데(프로걱정러) 엄마 얼굴 보니까 마냥 좋아서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엄마 사랑해잉.
그리고 신랑이 정말 걱정하고 또 걱정했던 축가... 오빠가 노래를 잘 부르니까 나중에 축가 직접 해달라는 말을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연애 시절부터 계속해왔는데 진짜 하게 될 줄이야. 코인노래방에서도 정말 많이 연습한 남편인데, 실수 없이 정말 잘 불렀다! 신랑의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몽글몽글하면서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 결혼하는 게 실감 나기도 하고~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남편이 최고야.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이 부분에서 우는 신부가 정말 많아서 나도 걱정했었다. 엄마 아빠 눈 마주치면 눈물 나니까 보지 말라는 팁을 듣고, 미리 눈 안 마주쳐도 서운해하지 말라고 언급까지 해뒀을 정도임. 그런데 엄마 아빠 얼굴 봐도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아서 안 울었다. 앞으로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계속 볼 건데 왜 슬프지, 이런 생각? 내가 결혼 직전까지 계속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몇 년 동안 따로 살고 있던 상태라서 무던하게 넘긴 거 같기도 하다.
그런데 솔직히 결혼식 때 나는 엄마 아빠 동생, 가족 중에 한 명은 울 줄 알았는데 다 안 울었음. ㅋㅋㅋ 나중에 여쭤보니까 나랑 똑같은 생각이셨다고 함, 계속 볼 건데 왜 슬프지? 아무튼 눈물 없는 행복한 결혼식 좋지 뭐!
결혼식의 마지막은 신랑 신부 행진! 빌라드알티오라는 행진 때 어두웠던 조명이 신랑 신부가 걸어가면서 하나씩 켜지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참 예뻤다. 거의 다 걸어갈 즈음에는 다 켜진 조명으로 환하게 끝남! 플라워샤워도 살랑살랑 예쁘게 떨어진다. (주의할 점, 플라워샤워 떨어질 때 위에 쳐다보면 사진이 안 예쁘게 나오기 정면 보기)
결혼식은 끝났지만 양가 가족, 친적, 친구, 직장 동료 사진 촬영이 남았다. 빌라드알티오라 원판 사진도 함께 촬영이 진행됨! 이쯤 되니 긴장이 거의 완전히 풀려서 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왔다.
사진을 다 찍고 난 후에는 우린 폐백을 하지 않아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연회장을 돌며 인사를 드렸다. 남편은 셔츠에 바지, 나는 롱원피스를 입었다. 우리가 오후 2시 예식이라 밥을 먹고 온 분도 꽤 계셔서, 사람이 막 많지 않아 오히려 편하게 입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굳이 한복 안 입어도 됨!
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야 빌라드알티오라에 따로 준비되어 있는 양가 가족 식사룸에서 밥을 먹었다. 너무 배고파서 이것저것 잔뜩 먹음. 결혼식도 끝났으니까 다이어트 신경 안 쓰지롱.
밥 먹고 정산실에서 계산 마치고, 남은 답례품 교환권은 양가 가족이 골고루 나눠 바리바리 챙겼다. 진짜 결혼식 끝!
솔직히 나는 결혼식이 끝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후련하긴 했지만 뭔가 허무하고 이게 끝인가? 싶었다. 오늘 딱 1시간을 위해서 몇 개월동안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건가, 현타가 온 것 같기도 하다. 긴장한 상태에서 빨리 진행되니까 잘 기억도 안 남. 나중에 DVD라도 봐야 좀 실감이 날 듯! 이렇게까지 본식 기억이 안 날 줄이야, DVD 하길 잘했다.
그리고 본식 스냅을 했더라도 친구나 가족들에게 (엄빠 제외) 꼭 사진 많이 찍어달라고 강조하자. 사진은 다다익선, 많을수록 인생 사진 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허무하면서 후련했던 빌라드알티오라 본식 당일 후기 끝!
'소박소박 일상 > 결혼준비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준비 일기 39 - 근로복지공단 혼례비 대출 받기 (0) | 2023.08.02 |
---|---|
결혼준비 일기 38 - 고민 끝에 선택한 예물 가방 (0) | 2023.06.23 |
결혼준비 일기 36 - 혼인서약서와 성혼선언문 작성 (샘플 공유) (0) | 2023.06.10 |
결혼준비 일기 35 - 본식 당일 준비물과 주의사항 (2) | 2023.06.06 |
결혼준비 일기 34 - 빌라드알티오라 리허설과 식권 수령 (0) | 2023.06.03 |
댓글